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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 고령군 고곡면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산막동, 국전동을 병합하여 월막동이라 하여 임천면에 편입되었다가 1930년 임천면과 쌍동면이 병합됨에 쌍림면에 편입되었고 1988년 5월 1일 동이 리로 바뀌었음

역사와 전통문화가 살아있는 산간분지마을로 옛 고곡면의 주 마을로써 산골문화와 선비문화를 조화롭게 보존하고 있음
 

월막유래

마을 뒷산의 생김새가 달 같이 둥글게 생겼고, 밤이면 달빛에 비친 뒷산의 모양이 차일(幕)을 친 것 같아 달막, 다르막, 달막이었는데 한문표기를 하여 월막(月幕)이라 함
마을 뒷산에 달같이 생긴 바위가 있어 달바우, 달바위라 부르다 월막이라 부름
옛날 달마대사가 이곳을 지나다 머물렀는데 '달마', '다르마', '달막', '월막'으로 부름
 

국밭유래

약 300여년전 쌍림면 귀원(貴院)에서 살던 현풍 곽(郭)씨들이 난을 피하여 이곳으로 옮겼는데 이주 당시 들에 국화(菊化)가 만발하여 장관을 이룬 것을 보고 이주한 곽씨들이 만발한 국화처럼 번창하자는 뜻으로 '국화밭'이라 불렀는데 그 음의 변하여 국밭이됨
 

산막유래

이 마을의 첫 이주자는 중국의 곡부인 '공(孔)'씨들이 이곳에 정착하여 갑자기 집을 짓고 살 수 없어 그들의 습성대로 산에 움막을 짓고 살았다 하여 산막이라 불림
이것이 사마골로 불리워지게 되고 '삼마' '삼학','삼막'이라고도 불림
어떤 이들은 ‘월막’, ‘국밭’ 에 이어 세 번째 마을이라 하여 ‘삼마’, ‘삼막’이라고도 함
이 마을 개척 당시 마을 주위에 큰 소나무 위에 세 마리 학이 날아와 살았다하여 삼학이라고도 하는데 지금도 많은 사람들은 ‘사막골’로 부름
 

월막 앞산 도꾸이산 허리에 안개가 끼면 삼일만에 비가오고 월막 뒷산 참나무잎이 뒤집어지면 비 올 바람이라 함

도꾸이산에 비 묻으면 비오는 양이 적으며, 미숭산에 비 묻으면 많은 비가 온다고 함
홍수가 날 때 치이(키)를 머리에 쓰고 ‘물이야 물이야’하고 다니면 수해가 없다고 하여 마을 앞 제방에 위험이 있을 때 마다 이렇게 함
월막 뒷산 뒷듬에서 큰돌이 떨어져 굴러 내리면 마을에 초상이 난다고 함
 

미숭산 천제당에서 드리고 장만한 음식을 정성껏 하느님께 드리고 제사를 모시고 난 뒤 주민들은 그곳에서 음식과 술을 나누어 먹음

잡담을 하거나 불경한 행동은 결코 하지 않으며 농악을 울리며 미숭산을 내려와 마을 입구에 닿으면 기우제 참석 못한 부녀자들이 시월보에서 비오기를 기도함
농악이 들어오면 바가지로 봇물을 더서 뿌리면서 '비가온다' '비가온다'고 고함을 지름